로스앤젤레스에서 2년을 살았지만 이렇게 추운 건 처음이다. 여기 누구든 고어텍스 장갑을 300달러에 판다면 당장 사겠다. 진심이다. 현금도 있다.
시작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내 뒤에는 존경받는 미국 대통령이자 훈장 받은 전쟁 영웅이 앉아 있다. 그런데 고작 케이블 TV 토크쇼 진행자가 이 자리에 서서 지혜를 전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오늘날 미국의 문제점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없을 테다.
졸업생, 교수진, 학부모, 친척 여러분, 그리고 그냥 구경 온 어르신들, 좋은 아침이다. 2011년 다트머스 졸업생 여러분, 축하한다.
오늘 여러분은 특별한 성취를 이뤘다. 또래 미국인의 92%는 갖지 못한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이제 여러분은 노동 인구의 8%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중퇴자들 따위보다 말이다.
참고로 저커버그 씨 이야기를 하자면, 옆방 친구와 대화하려고 거대한 소셜 네트워크를 발명해야 했던 곳은 하버드뿐일 거다.
졸업식 연사로서 내 첫 번째 임무는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예컨대 여러분은 이 졸업장을 받기 위해 4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공부했다. 하지만 다트머스는 영화 <트와일라잇>의 조연 배우를 인터뷰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똑같은 학위를 준다. 받아들여라.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또 다른 증거는, 비가 오면 무대 위의 권력자들은 텐트 밑에 있고 여러분은 그냥 젖는다는 사실이다.
오늘 나를 초대해 준 김용 총장께 감사드린다. 전화를 끊고 그에 대해 좀 알아봤다. 그는 하버드 의대 학과장을 지냈고, WHO에서 태스크포스를 이끌었으며, 맥아더 천재상을 받았고,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맙소사, 도대체 무슨 결핍이 있어서 이렇게 열심히 산 건가? 다트머스가 세계적인 인류학자인 그를 고용한 건, 졸업생들이 왜 모닥불 주위를 111바퀴나 도는지 연구하기 위해서였을 거다. 초대해 줘서 고맙다. '냄새나는 피터'라고 불러서 미안하지만 영광이다.
어떤 이들은 나를 유명인으로 보겠지만, 나도 어젯밤엔 말 그대로 여러분이 앉아있는 그 자리에 몰래 앉아봤다. 내가 똑똑하지 않으며, 시간이 남아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뉴햄프셔에 오니 참 좋다. 이곳에서 명예 학위도 받고, 차 트렁크에 실을 수 있는 만큼의 합법적인 폭죽도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도착하자마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생각했다. '와, 벤 앤 제리 아이스크림 공장이 있는 주(버몬트) 바로 옆에 있는 주에 왔구나.'
하지만 오해하지 마라. 두 달 전 연설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이 임무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여러분이 기말 과제를 준비할 때와 같은 강도로 준비했다. 어제 늦은 밤, 레드불 두 캔을 마시고 각성제를 흡입한 뒤 <콜 오브 듀티>를 몇 시간 하고 나서 브라우저를 켰다. 위키백과가 정리를 제일 잘했더라. "다트머스 대학은 미국 뉴햄프셔주 하노버에 있는 사립 아이비리그 대학이다." 고맙다. 행운을 빈다.
학교 교훈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Vox Clamantis in Deserto)'다. 내가 들어본 중 가장 한심한 교훈이다. 아마 '두꺼운 덤불 속에서 조용히 훌쩍이기'나 '바지 없이 젖은 소매로 콧물 닦기'를 간신히 제치고 선정됐을 것이다.
상징색은 녹색이다. 1867년 프레드릭 매더가 이 색을 고른 이유는, 찾아보니 진짜였는데, "다른 대학이 안 쓴 유일한 색"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슬픈 사연은 처음 듣는다. 다트머스, 넌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너희는 그 어떤 대학보다 위대한 '가상의 미국인'들을 배출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메러디스 그레이, <매드 맨>의 피트 캠벨,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
사실 난 내년에 있을 너희의 존경하는 동문, '초큘라 백작'의 졸업 연설이 기대된다. 물론 가장 위대한 가상의 동문은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다. 상상해 봐라. 진짜 재무장관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나라가 어떻게 됐겠나?
무슨 말 하려는지 안다. "우리한텐 닥터 수스(Dr. Seuss)가 있잖아요." 솔직히 우린 닥터 수스 얘기에 지쳤다. 문학계에서 운율을 맞추려고 없는 단어를 지어내는 건 반칙이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이 자기애 강하고 허세 부리는 형들이라면, 다트머스는 쿨하고 자신감 넘치는 라크로스 선수 동생이다. 파티를 즐길 줄 알고 다운 조끼가 잘 어울린다. 브라운 대학은 방에서 안 나오는 레즈비언 여동생이고, 펜실베이니아, 컬럼비아, 코넬은... 솔직히 누가 신경이나 쓰나?
여러분은 훌륭한 학교에 다녔고 역사적인 졸업 축사를 들을 자격이 있다. 내 메시지가 영원히 기억되어 세상을 바꾸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획기적인 정책을 제안한다. 이름하여 코난 독트린이다.
코난 독트린에 따라 모든 학사 학위는 석사로, 석사는 박사로 격상된다. 모든 MBA 학생은 즉시 화이트칼라 전용 교도소로 이송된다. 모든 비용은 동창회가 지불한다. 그리고 어린애 같은 박수를 유도하려고 값싼 유머를 남발하는 모든 졸업 연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2011년 졸업생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이제 농담은 그만하고 진짜 조언을 하겠다. 공허한 진부한 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 앞으로 몇 년을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실질적인 조언이다.
첫째, 성인 여드름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둘째, 셔츠를 입은 채로 다림질하지 마라.
셋째, 졸업 가운 안에 화려한 컨버스 운동화를 신는 건, 동기들에게 "이건 내 남은 인생에서 내릴 수많은 끔찍한 결정 중 첫 번째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좋은 방법이다.
학부모님들을 위한 조언도 있다. 자녀가 순수미술이나 철학을 전공했다면 걱정할 만하다. 그들이 취업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곳은 고대 그리스뿐이다. 그 학위로 행운을 빈다. 지금 채용을 하는 곳은 파네라 브레드와 멕시코 마약 카르텔밖에 없다.
이제 암울한 예언이나 부정적인 이야기는 그만두겠다. 믿거나 말거나, 오늘 내가 이곳에 온 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11년 전 하버드 졸업식에서 연설한 뒤로 나는 졸업 축사를 하지 않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이 찾아왔고, 작년에 나는 힘들지만 심오한 교훈을 얻었다. 그걸 나누고 싶어서 집에서 3천 마일이나 날아왔다.
2000년 졸업생들에게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정정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 좋지만, 실패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라.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가 빼먹은 말은, 고통이 사람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간다는 것이다. 실망은 쓰라리다. 여러분처럼 성공 지향적인 사람들에게 실패는 방향 감각을 잃게 한다. 니체가 진짜 했어야 할 말은 이거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대낮부터 값싼 와인을 마시며 만화 채널이나 보게 만든다."
아이비리그 졸업 축사 연사는 으레 성공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불과 1년 전, 나는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 17년 동안 나를 키워주고 정의했던 시스템에서 버려지는, 공개적이고 처참한 실망을 겪었다.
나는 길을 잃었다. 경력은 끝장난 것 같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침반도 없이 안개 속에 표류하던 나는 닥치는 대로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수염을 기르고, 트위터에 코미디를 올리고, 전국 투어를 떠났다. 파란 가죽 쫄쫄이 옷을 입고 무대에서 기타를 쳤다.
내 경력과 지위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기본 케이블 채널로 갔다. 어리석고, 파격적이고, 즉흥적인 일들을 저질렀다.
그런데 파란 쫄쫄이 옷만 빼면, 그 시간은 내 직업 인생에서 가장 충만하고 매혹적인 한 해였다. 나는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고, 도전적이었으며,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가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이 세상에서 최악의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큼 해방감을 주는 일은 없다.
22살의 길이 반드시 32살, 42살의 길과 같을 필요는 없다. 꿈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한다.
전설적인 코미디언 잭 베니가 있었다. 젊은 쟈니 카슨은 잭 베니가 되고 싶었다. 그는 잭 베니를 흉내 냈지만, 자신의 독특한 기질과 시대의 변화 때문에 잭 베니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영웅을 완벽하게 모방하지 못한 그 '실패'가 그를 역사상 가장 웃긴 사람으로 만들었다.
데이비드 레터맨은 쟈니 카슨이 되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그 결과, 우리 세대 코미디언들은 데이비드 레터맨이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레터맨이 되지 못했다.
요점은 이것이다. 우리가 이상형이 되는 데 실패하는 과정이 결국 우리를 정의하고, 우리를 독창적으로 만든다. 쉽지는 않다. 하지만 불행을 받아들이고 잘 다루면, 실패는 재창조를 위한 촉매제가 된다.
47살에, 25년 동안 집착했던 꿈이 깨졌다. 쇼 비즈니스계의 모든 코미디언에게 <투나잇 쇼> 진행은 성배와 같았다. 나도 그 목표를 달성하면 성공한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특정 직업이나 목표가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2000년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여전히 그 말을 믿지만, 오늘은 이렇게 덧붙인다. 두려워하든 말든 실망은 찾아온다. 하지만 실망을 통해 명료함을 얻을 수 있고, 그 명료함이 신념과 진정한 독창성을 낳는다.
졸업식 축사에서 "꿈을 좇으라"는 말보다 진부한 건 없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바뀔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4년 전 여러분이 상상했던 대학 생활과 지금의 기억이 다르듯이 말이다.
오늘 나는 바보 같은 농담도 했고, 진실도 말했다. 마지막으로 금기를 깨고 17개월 전 내가 했던 말을 인용하며 마치겠다. NBC에서의 마지막 방송, 서명하기 직전에 했던 말이다.
"열심히 일하고 친절하게 대하라. 그러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오늘 나무 뒤에서 2011년 다트머스 졸업생들에게 이 말을 전하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이 말을 깊이 믿는다. 대단히 감사하다. 그리고 축하한다.